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애니메이션/역사 (문단 편집) === 제1차 애니메이션 붐 <춘추전국 시대> === 발생 원인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1963년]] 제작된 철완 아톰을 기점으로 평가하는 의견이 많다. 철완 아톰 제작 이후, 몇몇 회사들을 시작으로 TV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활성화돼 일본 어린이들이 오후나 저녁 시간이 되면 텔레비전 앞으로 이동해 애니메이션을 보는 풍경도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미 이 시절부터 일본 방송시장이 세계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했었기 때문에[* 물론 이때는 미국을 제외한 강대국이나 선진국들도 광고시장이 그리 크지 못했다는것을 감안해야되기는 할것이다. 영국은 광고가 허용된 TV채널은 단 하나뿐에, 서독은 하루 20분씩만 광고를 할수있었던 식으로 광고규제가 엄격했고, 소련, 프랑스나 이탈리아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아이캐치]] 애니메이션이나 광고 애니메이션은 나름 발전(?)했었기는 했다~~] TV 애니메이션은 적지 않은 제작비에도 충분한 수익을 냈기 때문에(물론 방송사 한청이고 제작사는 완구 수입으로 제작비를 벌충해야했다.) 여타 방송사에서도 애니메이션을 잇따라 방영하면서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의 명성을 닦게 되었다. 이 시청자들은 성장해 이후 2차 애니 붐의 발생에서 간접적으로 기여했으며, [[이시노모리 쇼타로]], [[나가이 고]], [[요코야마 미츠테루]], [[아카츠카 후지오]], [[후지코 후지오]], [[데즈카 오사무]] 등등 1세대 일본 만화가들의 작품이 애니메이션화되면서 그들을 [[전국구]]급 인기 만화가로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당시의 메이저급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도쿄무비, 토에이 애니메이션, 무시 프로덕션, 타츠노코 프로덕션이 있었다. 이 와중에 일어난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노동조합 파업과 1973년의 무시 프로덕션 파산으로 인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가 사실상 대규모로 재편성되는데, 무시 프로덕션 출신 스태프 중에선 선라이즈나 매드하우스를 창립한 애니메이터들도 있었고, 이때 해고되거나 일자리를 잃은 무시 프로덕션, 토에이 애니메이션 출신 스태프들은 도쿄무비신샤로 향했다. 다만 철완 아톰 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60년대 중후기의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방송사들로부터 제작비용을 많이 받지 못했기 때문에, 완구 관련 상품으로 적자를 보충하고 있었으나 완구 업계에서 상품화에 미지적거린 반응을 보여 이로 인한 제작비 조달이 부족해지자 TV 애니메이션의 제작 편수를 줄이기도 했었다고 한다.[* 일본 애니 업계의 원로 각본가 중 1명인 츠지 마사키는 당시 TV 애니메이션은 망할 지도 몰랐을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프레임을 살펴보면 현재의 일본 애니메이션보다 더욱 원동화 프레임이 경직된 작품들이 수두룩한 것을 알아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